스토리1

[스크랩] 정의가 마르고 자유가 독점되는 사회

논깡 2007. 2. 23. 09:40

            어디까지 보호할 것인가?

  모든 자유는 보호될 가치가 있는가? 그 자유를 누리는 이유 때문에 타인이 자유를 구속당하고 혹은 피해를 입는다면 이것은 보호될 가치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오해하고 있는 것이 있다. 다수의 이익 때문에 소수의 이익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기대된 이익의 문제이지 피해의 문제와 다른 것이다. 소수가 저지른 일 때문에 입는 피해가 있는데 왜 제재하지 못하는가? 도시가 재개발되면서 소수가 상당한 이익을 보면서 다수가 집을 등지게 된다면 소수의 이익의 분배는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지만 이것을 소수의 이익분배라 한다면 처음부터 이익배분이 잘못된 것이다. 수천억이 소수에게 이익으로 남는데 집을 떠나게 된다면 이것이 제대로 된 판단일까? 이익배당을 처음부터 과다하게 나도록 만들어 놓고 이렇게 안 되면 투자할 집단이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사회 모든 질서가 바르지 못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아직도 학력차 때문에 지역격차 때문에 교육 분배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그 이면에는 한 마리 양을 위하여 99 마리를 포기한 생각이 들어 있는 것이다. 다함께 상생하는 길을 놓고 애국심은 자유보다 약하게 취급하는 원리로 들어가서는 안 된다. 물론 차별이 존재하지 않으면 사회 발전은 더딜 수 있다. 그러나 더딜 발전이 다함께 행복할 수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나는 지금 구체적인 문제와 일을 접근시키려는 것

  지금까지 우리는 너무 피상적인 말과 행동에 젖어 있었다. 아마도 그 근저에는 이익집단의 이익과 너무 밀접해 있어서 자신의 이익 때문에 판단이 흐려져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몇 달 전에 40 대 후반인 분이 취업하러 와서 면접할 때 생각이 때때로 상념에 잡히게 했다. 어떤 기업에서 명퇴한 분이 왔었다. 초라한 영세기업에서 오히려 더 큰소리 치고 면접을 보고 있었다. 자신은 집이 세 채라고 큰소리치면서 어느 교회 집사이고 세 채는 순전히 절약의 결과인데 이 집조차 나라 때문에 오래 못가지고 있을 거라고 하면서 말이다. 우선 나이가 든 분이라 그 나이에 취업하려는 것이 애듯 해서 가능하면 함께 일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결과는 다른 곳으로 가고 있었다. 지나친 수익에 대한 애착이었다. 나는 그가 벌어들일 수 있는 금액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있었고 그는 그의 연륜이 어쩌고 했다. 내가 생각한 것은 취업으로 함께 사는 길에 모색이었고 그는 여유 돈을 생각하는 것이었다. 물론 터무니없는 요구에 일은 결렬되었고 다시 생각이 나서 며칠 후에 전화를 걸었다. 나는 사람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나이에 그가 할 일이 없으면 외롭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결과는 호의가 싸늘한 응대였다. 내가 본 것은 그 분의 연륜이 아니다. 일을 하든 못하던 자신의 시간은 돈이고 남의 시간은 시간일 뿐이라는 생각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가 생각하는 사회는 내 것 밖에 없었고 내 것이 아니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이다. 자신은 투기를 하면서 명퇴라는 이유만으로 세상이 잘못되었고 연륜은 사정을 안보고 얼마를 주어야 된다는 불합리를 합리라고 생각하는 중년의 삶에서 어두운 나라의 미래를 보았다. 이 문제들이 모여서 곧 사회문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전혀 그가 필요 없는 사람이지만 우리사회의 미래를 위해서 같이 일해야 될 것 같았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하고 있지 않다. 이제는 소속감이 필요한 사람에게 함께 살 길이 있다면 만나를 받아드릴 터로 직장을 주고 싶지만 대개는 욕심으로 더 갖고 싶을 것이다.

  얼마 전까지 같이 일하던 어떤 분을 생각하면 속이 답답해진다. 계속 적자는 싸여 가는데 아이가 둘인 가장이 일보다 오락이며 채팅이 자신의 직업보다 더 중요하게 하고 있었다. 도무지 노력은 안하고 버리는 시간들 매출을 올려야 봉급을 번다는 생각은 없고 시간이 지나면 이익이 생기던 아니던 월급을 받는데 더 급급한 모습에서 정말 생의 활력을 잃고 싶었다. 돈이 필요한 것은 다 함께 살기 위한 수단인데 자신만의 생활이 중요하고 수익은 업주가 만들어 준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누가 만든 것인가? 생계는 고용인이든 업주든 다 같이 중요한 것이다. 우리 사회가 언제부터 고용주는 무한 책임이요 근로자는 시간만 보내면 일이 끝나버리는 사회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국가가 생활을 보장해줄 가치가 어디까지 있는 것인가? 도무지 자신의 삶을 자신이 책임지고 싶지 않고 사는 사람들은 국가가 오랫동안 만든 것이다. 한해를 일하고 실직수당 받으려 가는 사람들 나중에 발견하고 권고사직이 아니라고 신고하려니 벌금이 300 만원이 된단다. 누가 제대로 사회를 만들 것인가? 우리 사회는 꾸준한 행복을 만들어 주려는 것이 아니라 복권 같은 찰나적인 행복을 위한 계획이 더 중시되는 사회이다. 이는 분명 사회를 잘못 만들어 온 국가에 책임이 있다. 국민을 위한 교육체계도 다시 만들어 사람의 목표와 가치를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 연구비가 부족하여 연구하기 힘들다고 그 야단이던 대학들이 연구비를 받으니까 용돈으로 유용하는 이런 교육자들 그리고 계속되는 비슷한 사건들 속에서 미래를 만들려면 교육을 제대로 개편해야 한다. 알맹이는 빠져 있고 겉모양으로 일을 처리하는 사회가 언제쯤 제대로 될까?


             떠날 사람 떠나고 다시 만들자

  우리 땅에서 사는 이들은 이미 소작인뿐이다. 하루하루를 살면서 결산하면 세금에 공과금에 그리고 학비에 그리고 금융비용에 남는 것은 별로 없다. 세금에 혜택을 받고 공과금에 혜택을 받고 서민의 생활비에서 혜택을 받는 쥔이 따로 있다는 말이다. 결국 그 비용이 흘러가는 것은 소작인을 조정하는 사람들에게 가는 것이다. 그 5 %의 통장은 계속 늘어 간다. 그 변명으로 계절마다 적자타령으로 올려 논 비용에 대한 계산을 잘하기 힘든 것이 가진 자들의 계산법이다. 이 계산법이 어디가 잘못되었는지를 찾는 것이 정책을 집행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한다. 다 합법적 이라고 이렇게 합법화 시킨 이면에 누가 있었을까? 소매상을 죽이면서 유통합리화 한다고 하고 도시영세민을 쫒아내면서 도시재개발한다고 하고 도시정비 한다고 하면서 특정인의 주머니를 채워 주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벤처를 장려한다면서 벤처가 대기업에 종속되도록 만들고 금융비용을 지원한다면서 대기업을 거쳐야 지원되고 망하면 국가가 책임질 일을 왜 대기업이 이자를 수수료를 갖게 하는지 서민의 머리로는 생각할 수 없을 때 법이 그렇게 되어 있었다. 왜 수도권의 재개발지 토지 등을 60 % 이상을 수의 계약으로 특혜 분양을 하면서 수조씩 이익을 보장 해주고 이를 법적으로 뒷받침해준 이들의 처벌은 없는가? 처벌만으로 될 일이 아니다. 환수하고 제재하고 벌금을 물어야 한다. 서민이 그랬다면 지금 어디에 가 있을까? 이렇게 서민을 등쳐간 부분이 얼마나 많을까? 내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닌 것은 더 많을 것이다. 같은 길도 사도를 내는 것보다 공익도로를 만들면 돈이 더 들어가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 문제는 물론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 축적된 일이라 한다. 그러면 고쳐야 한다. 아예 고쳐서 새롭게 할 자신이 없으면 정치나 정권도 민간 불하하라????


                                 함께 사는 사람들    송 세준 씀

출처 : 정의가 마르고 자유가 독점되는 사회
글쓴이 : 친구여 반가워요 원글보기
메모 : 역사앞에 죄인들인그들이 기득권을 쥐고있으면 민초드은 설 땅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