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유는 역사적으로 경상도가 반역기질이 강하고 여러번 반역향으로 찍혔기 때문이죠.
1. 고려는 초기에 천민주거지역 향소부곡의 400여개중 인구가 고려전체의 20%도 안되는 경상도에 200개가 넘는 향소부곡을 지정하여 거의 경상도 전체를 천민주거지역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2. 거기에 비해 왕건은 전라도 나주에서 태어난 왕비와 왕자, 전라도 영암에서 태어난 도선을 국사로.. 역시 전라도출신 최지몽을 책사(나중에 살아서는 상주국, 죽어서 태사로 추증)로 하는등 권력의 반이상을 전라도사람들에게 맡깁니다. 고려초에 그처럼 천시와 멸시를 받은 경상도입니다.
3. 고려초기 이러한 멸신와 천시를 견디지 못하고 김사미/효심등은 수년동안 반란을 일으키다가 그나마 대접받던 경주마저도 천민주거지역으로 강등되고 고려 중앙군에게 너무도 많이 학살당하고 탄압당하여 밀양에 가면 아직도 까마귀가 반란군들의 시체를 뜯어먹었다는 오치재가 있습니다.
5. 조선왕조는 경상도를 기반으로 하는 사림과 남인들을 걸핏하면 잡아다가 죽이고 등용을 해도 대개 중용을 하지않았는데 이러한 영향으로 영조때 이인좌와 정희량이 반란을 일으킨것입니다. 이인좌는 충청도에서 반란을 일으켰지만 영남의 반골에 이골이 난 조선왕조와 영조는 대구부 남문앞에 영남토벌비를 세우고 반역지향으로 못박아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이후 영남이 복권될때까지 100여년간을 영남은 과거를 볼수 없게 제한을 가하고 행여 등용이 되어도 정5품이상을 승진을 못하게 못박아 버렸습니다. 또한 나중에 복권이 되었으나 과거에 경상도 사람은 임금이 낙점을 하지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7. 조선은 본관제와 신분제가 엄격히 지켜진 사회였는데 조선의 주체세력인 전주이씨나 조선후기 대명문가인 전주최씨나 나주의 남평문씨를 빼고서라도 같은 박씨라도 전라도 반남박씨나 순천박씨는 우리나라 2위성씨인 밀양박씨의 10분의 1인데도 벼슬아치가 더 많고 인구1위의 김해김씨는 조선왕조내내 정승이 겨우 1명이나 전라도 광주의 광산김씨는 조선 3대 명문가입니다. 조선후기 권력을 잡은 안동김씨는 경상도와는 관계가 없는 충청도와 한양을 기반으로 하였으며 스스로를 안동김씨라 부르지 않고 장동김씨라고 불렀으며, 나주출신 나합같은 전라도 여자들이 내실을 장악하고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전라도는 농경사회에서 가장 잘먹고 잘살았던 지역으로 이나라의 중추를 이루는 주류였고 경상도는 감히 비교도 안되는 부와 권력을 누렸습니다.
8. 60년대까지 전라도는 서울,경기는 물론 대구,강원도까지 국회의원을 당선시킬만큼 매우 좋은 평가를 받았으나 경상도는 대구폭동의 영향과 친일파는 용서해도 빨갱이는 용서못하는 이승만의 정책으로 이승만정권에 대해 가장 많은 데모를 했던 지역이 경상도이고 당시 대구매일신문은 가장 반정부적인 신문이었습니다. 또한 6.25때 가장 많은 국군희생자를 낸 지역이 전라도였으나 경상도는 남로당이 주도한 대구폭동의 영향으로 무고한 양민들이 빨갱이로 몰려 학살당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9. 대한민국 건국후에는 굵직한 반란사건은 다 경상도 출신이 저지릅니다. 박정희,전두환, 노태우등이죠. 또한 해방후 최초 최대 공산폭동 민간반란이 바로 1946년 대구 폭동이죠.
이상과 같이 경상도는 역사상 가장 반란과 반역이 많은 고장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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