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1
사랑은 없다 - 김 나영 - 1. 수화기를 내려놓고, 핸드폰도 끈다. 연결되어 있던 기억의 모든 전원을 꺼 버린다. 우리는 우리 안에서 뭉그적거리며 잘 버텨 왔다. 그래, 그와 나의 사랑은 두뇌의 화학적 작용에 지나지 않았다. 이젠 나의 대뇌에 항체가 생겨버린 것일까. 그의 단단한 턱을 바라보고 있어도 사랑의 화학물질이 생성되지 않는다. 이쯤에서 장미의 목덜미에 칼날을 들이댄다. 2. 기억하고 있나요. 우리가 처음 만나던 봄날, 아찔했던 현기증, 벌들이 윙윙대던 벚꽃 터널과, 그 길 끝에 발라드 선율이 모략 처럼 흐르던 찻집, 그리고 독약처럼 달콤했던 커피 한 잔, 그 속으로 설탕보다 빨리 몸을 풀어헤치던 외로움, 창 밖에 미친 듯이 흘러내리던 노을 속에서 발갛게 익어 가던 얼굴을 신표(信標)마냥 바라보며 앉아 있었죠. 3. 내 생식기에서 페로몬냄새를 감지한 그대가 촉수를 꼿꼿이 세우고 나비처럼 날아왔다. 부끄러움도 모른 채, 생식기 하나만 달랑 달고 날아왔다. 그리고 우리는 냄새나는 사랑을 하였다. 4. 나 그대 잊으려고 사랑은 없다고 쓰는데 사랑은 왜 이렇게 부 질없이 말이 많은가. 내 가슴에 노오란 알을 까대는 사랑이 새빨간 거짓말을 낳고, 거짓말은 족보를 낳고, 족보는 사회를 낳고, 사회는 시인을 낳고, 시인은 또 다른 사랑을 낳고, 사랑은 무화과 나무를 낳고… 5. 내가 정말 두려운 것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보다 사랑이란 말 속에서 아주 조용히 돋아나는, 돋아나는 말오줌 풀 같은 소름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