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야화 139/선비가 잊지 못하는 여인 (士不忘女)
선비가 잊지 못하는
여인 (士不忘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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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어느 이름난 선비가
남부 지방을 여행하고
상경하다가,
마침 길가에서 사당패를
만나 가사(歌詞)를 노래하는
한 여인을 보게 되었다.
비록 고운 옷을 입었거나
화장을 하지는 않았지만,
청순한 웃음과 아름다운
눈매에 구름 같은
머리를 하고 있어,
언뜻 보기에 사랑스러워
정을 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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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선비는
자신을 수행하는 종자들에게,
"너희들은 저 여인의 노래를
한 번 더 들어보고
싶지 않으냐?"
하고 묻자 모두들 이렇게
대답했다.
"감히 청할 수는 없사오나
진실로 들어보기를 원합니다."
"그렇다면 좋다.
가야 할 길도 얼마 남지 않았고
봄날의 해도 기니,
.
여관에 들어가 잠시 쉬도록
하자구나."
선비는 이렇게 말하고,
그 사당패도 함께 여관으로
따라 들어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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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여인이 당 아래에 와서
절을 하기에 노래를 시키니,
그 태도가 요염하고
노래의 절주와 음률이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이었다.
곧 선비는 그 여인을 당 위로
올라오라고 하여 앉히고
한문을 아느냐고 묻자,
여인이 대답했다.
"글을 조금 배웠습니다만,
조잡하여 감히 안다고는
못 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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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선비가 시험삼아
운자(韻字)를 부르며
시를 지어 보라고 하니,
여인은 이렇게 읊었다.
三月離家九月歸
삼월에 집을 떠나 구월에
돌아가니
(삼월이가구월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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楚山吳水夢依依
초나라의 산과 오나라의
물이 꿈속에 아련하네.
(초산오수몽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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此身恰似隨陽鳥
이 몸 떠돌아서
철새와 흡사하니
(차신흡사수양조)
飛盡南天又北飛
남녘 하늘 다 날고
또 북녘으로 날아가네.
(비진남천우북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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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감탄한 선비는
그 여인의 손을 잡고,
"네가 지은 시를 보니,
보통 천한 신분의 여인이
아닌 것 같구나.
.
너의 내력을 한번
말해 줄 수 있겠느냐?"
하고 넌지시 묻자
여인이 대답했다.
"비록 사족(士族) 집안의
출신이오나 지금은
사당(舍堂)의 행차를
따라다니니,
그저 사당으로만
이해하시면 되옵니다.
구태여 그 내력은 알아
무엇 하시렵니까?"
.
선비는 필시 이 여인의 집안이
누구한테 죄를 지어
떠돌게 된 것이라 생각하면서
후하게 돈을 주고
그 곳을 떠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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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로 선비는
사람들을 만나면,
늘 이 여인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잊지 못해 했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