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국부론"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1776년)
18세기 유럽은 봉건주의에서 자본주의로 사회가 변하고 있을 때였다.
영국의 공업화로 인해, 시중에 떠도는 상품은 많아졌고,
자유무역은 흔해졌다.
당시 유럽을 지배하던 사상은 중상주의 였다.
중상주의는 금과 은으로 국가의 부를 평가하는 것이었는데,
아담 스미스는, 이 같은 중상주의를 매우 불편하게 여겼다.
결코 금과 은이 국가의 부를 평가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가 프랑스로 여행을 갔을 때 일이다.
그는 프랑스의 주치의 '프랑수아 케네'를 우연히 조우하게 된다.
그는 의사라는 신분에 맞게, 사회를 하나로 육체로 표현했다.
"사회가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통화(자본의 흐름)가
혈액의 역할을 한다" 라는 그의 말에서
아담 스미스는 많은 영감을 얻게 된다.
프랑수아 케네는 당시 중농주의를 주장했는데,
중농주의란, 토지가 부의 중심이고
토지의 크기가 국부를 결정한다는 것이었다.
프랑수아 케네의 경제에 대한 해석은,
아담 스미스에게 큰 영감을 주고,
3년의 여행을 마친 뒤
아담 스미스는 그의 희대의 역작
'국부론'을 집필하기 시작한다.
그는 집필 기간에, 영국의 실증주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과 자주 사교자리를 가졌는데,
데이비드 흄의 객관적, 과학저 근거에 기인하는
실증철학 또한 역시 국부론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들의 만남에서 다음과 같은 유명한 대화가 탄생한다.
"우리가 빵이나 고기, 술을 먹을 수 있는 이유는
빵집 주인의 이웃에 대한 자비심 때문이 아니라,
각자의 이기심 때문일세"
빵집 주인은, 그들의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빵을 만들어 파는 것이지
이웃을 먹이기 위해 빵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때 '보이지 않는 손'이 빵 가격이 치솟지 못하게 제어하고,
시장을 돌아가게 만든다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손' 이라는 단어는 국부론에서
실제로 자주 언급되는 말은 아니지만,
그 개념 자체가 당시에는 획기적인 경제 논리가 되었다.
아담스미스는, 그의 저서 '국부론' 에서 최초로
'분업'이라는 새로운 생산 방식을 소개했다.
공장 하나에서 한명이 “핀” 하나를 만들면 하루에 48개를 만드는 제품을,
18개의 공정과정으로 분업화 하면
하루에 4만 8천개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또 한번 산업 혁명과 기술의 진보에 큰 영향을 끼쳤다.
국부론, 즉 국부는 무엇에 의해 결정되는가?
아담 스미스는 금과 은이 국가의 부를 결정짓는 다는
중상주의를 정면으로 반박하고
국부는 노동에 의해 생긴다고 주장하였다.
이 때, 국민총생산(GNP)의 개념이 생긴다.
이는, 현재 국가의 경제적 위상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이다.
국부론은, 다윈의 종의 기원이나 뉴턴의 책처럼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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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업, 국민총생산, 무역과 개방의 중요성,
보호무역의 문제점등 동서고금을 막론한,
경제 문제를 전 방위적으로 다루며,
근대 경제의 기본 원리를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근대 경제학의 효시)
아담 스미스는 국부론을 집필하고, 또한 많은 오해를 받았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완전경쟁시장을 이상적인 상태로 보았다는 것은 혹자들에겐 자유로운 부의 추구를 지향하는 것으로 비춰지며, 돈 많은 부자들의 편이라는 오해를 사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국부론 집필 이전에 '도덕론'이라는 책을 출판했다.
같은 맥락에서
인간의 경제적 이기심은 사회적 도덕 아래에서만 허용된다는 것은
아담 스미스에게는 당연한 지론이었다.
'인간은 도덕적 존재이고, 경제도 그 도덕적 역할 중에 하나이며
국부론은 인간 행동 규범 안에서 생긴 이론이라는 것이다.'
아담 스미스의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은 이러하다.
그는 인간이 이기적인 동물인 것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 속에서는 배려와 연민이 있기 때문에
이기적인 행동조차도 공공의 이익을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