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몇 년 전부터...인터넷 상에서 회자(膾炙)되고 있었던 글인 듯싶습니다.
(저만 모르고 있었나 보아요)
아마도 이 글은, (나이가 조금 지긋하신?)여성 분이 쓰신 글인 듯한데....
반대로, 남성의 입장에서도...충분히 이 같은 내용의 글을 쓸 수 있다고 보여져
이곳에 다시 올려 봅니다.
내용이 너무 좋아, 맞춤법 수준의 토씨 몇 개...고쳤음을 아룁니다.
나 늙으면, 당신과 살아 보고 싶어 (황정순 씀)
(하루의 일상 중에서)
나 늙으면
당신과 살아 보고 싶어
가능하다면 꽃밭이 있고
가까운 곳에 숲이 있으면 좋겠지
개울물 소리
졸졸거리면 더 좋을 거야
잠 없는 나, 당신 간지럽혀 깨워
아직 안개 걷히지 않은 아침 숲길
풀섶에 달린 이슬 담을
병(甁) 들고 산책 해야지
삐걱거리는 허리 쭈~욱 펴 보이며
내가 당신 하나 두울~ 체조시킬 거야
햇살이 조금씩 펴지기 시작하겠지
우리의 가는 머리카락이 은빛으로 반짝일 때
나는 당신의 이마에 오래 입맞춤하고 싶어
사람들이 봐도 하나도 부끄럽지 않아
아주 부드러운 죽으로
우리의 아침 식사를 준비할 거야
이를테면~ 쇠고기 꼭꼭 다져넣고
파릇한 야채 띄워 야채 죽으로 해야지
깔깔했던 입안이 솜사탕 문 듯 달콤할 거야
이 때 나직이 모차르트를 올려놓아야지
아주 연한 헤이즐넛을 내리고
꽃무늬 박힌 찻잔 두 개에 가득 담아
이제 잉크 냄새 나는 신문을 볼 거야
코에 걸린 안경 너머 당신의 눈빛을 읽겠지
눈을 감고 다가가야지
서툴지 않게 당신 코와 맞닿을 수 있어
강아지처럼 부벼 볼 거야
그래 보고 싶었거든
해가 높이 오르고
창 깊숙이 들던 햇빛 물러설 즈음
당신의 무릎을 베고 오래오래 낮잠도 자야지
아이처럼 자장가도 부탁해 볼까
어쩌면 그 때는 창밖의 많은 것들
세상의 분주한 것들
우리를 닮아 아주 조용하고 아주 평화로울 거야
(계절의 바뀜에 따라)
나 늙으면 당신과 살아보고 싶어
당신의 굽은 등에 기대 울고 싶어
장작불 같던 그 가슴, 그 불씨
사그러들게 하느라 참 힘들었노라
이별이 무서워 사랑한다 말하지 못했노라
사랑하기 너무 벅찼던 그 때
나, 왜 그렇게 어리석었을까 말할 거야
겨울엔 당신의 마른 가슴 덥힐 스웨터를 뜰 거야
백화점에 가서 잿빛 모자 두 개 사서 하나씩 쓰고
강변 찻집으로 나가 볼 거야
그때쯤엔 하마~ 그곳에도 눈이 내릴까?
봄엔 당신 연베이지빛 점퍼 입고
난, 목에 겨자빛 실크 스카프 메고
이른 아침, 조조 영화를 보러 갈 거야
감미로운 드라마 같은 영화
가을엔 희끗한 머리 곱게 빗고
헤이즐넛 보온병에 담아 들고
낙엽 밟으러 가야지
저 벤치에 앉아 사진 한번 찍을까?
곱게 판넬하여 창가에 두어야지
그리고, 그리고
당신 좋아하는 서점에 들러
책을 한아름 사서 들고
서재(書齋)로 가는 거야
난, 당신 책 읽는 모습 보며
화폭 속에 내 가슴속에
당신의 모습을 담아
영원히, 영원히 간직할 거야
그렇게 아름답게 늙어가고 싶어
나 늙으면 그렇게, 그렇게
당신과 함께 살아 보고 싶어.
김환기, "달밤의 화실" 195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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