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동해와 독도를 생각하다...펌

논깡 2012. 5. 4. 13:18
HOME > 사설칼럼 > 기고칼럼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기고칼럼
[칼럼] 東海와 獨島를 생각하다
기사입력: 2011/08/29 [14:14] 최종편집: ⓒ 문화저널21
트위터 미투데이 페이스북 요즘 공감
김혜정

김혜정 관장
[문화저널21 이코노미컬쳐 9월호] 애국가 첫 소절에서 동해와 백두산을 언급할 만큼 ‘동해’는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오랜 역사의 현장이자 정신적인 안식처이다. 여기에서 ‘동해물’은「광개토대왕릉 비문」의 ‘동해매(東海買)’에서 유래한 것으로 ‘매’는 물<水>을 가리키는 고구려어이다.

동해에 대한 옛 기록은『삼국사기』를 비롯하여,「광개토대왕릉 비문」,『고려사』,『조선왕조실록』과 문집, 다양한 종류의 고지도 등에서도 나타난다. 동해(東海)에서의 동(東)의 한자어는 태양이 나무에 걸쳐 떠오르는 형상을 의미한다. 천명을 받아 국가를 건립할 때면 언제나 동쪽을 향해 제사를 지냈고, 물과 불을 다스리며 우주를 휘감는 청룡 역시 동쪽에 자리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 민족은 동쪽이 단순한 방위의 개념이 아니라 일상적인 삶이며 희망의 원천으로 여기고 있다. 그렇다면 동해의 표기는 ‘East sea’가 아닌 ‘Dong-Hae’로 해야 우리 민족의 역사적인 의미를 간직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20여 년 전 우리 정부는 동해를 아쉽게도 ‘East sea’라고 국제사회에 공포하였다. ‘East sea’에는 우리 민족이 생각하고 있는 동해에 대한 감성보다도 방위를 나타내는 지시성만을 담고 있다. 이 점에서 볼 때 그동안 ‘동해’표기에 대한 우리의 노력이 얼마나 역사적인 의식이 결여된 채로 진행되어왔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런데 동해가 국제사회에서는 ‘East sea’도 아닌 ‘Sea of Japan(일본해)’로 더 알려졌다. 지난달 8일 미국 국무부에서 동해를 ‘일본해’로 단독 표기해야 한다는 의견을 국제수로기구(International Hydrographic Organization, IHO)에 제출했다. 이 소식이 전해지면서 ‘미국에 배신을 당했다.’라는 소리가 나오는가 하면, 어떤 정치인은 ‘한국 정부의 대미외교의 총체적인 실패’라고까지 표현한다. 미국의 ‘일본해’ 표기 지지 표명으로 8월 첫날부터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며 울릉도를 방문하려는 일본 자민당 의원들의 입국강행과 독도 영유권 주장이 포함된 일본의 ‘2011년 방위백서’ 발표는 우리 국민에게 대일, 대미감정을 자극하는데 충분하였다. 잊어버릴 만하면 불거지는 동해와 독도문제를 우리 국민은 언제까지 인내하며 지켜보고 있어야만 하는지 모르겠다. 도대체 어떤 연유가 있었기에 동해가 일본해로 불리고 독도가 다케시마<竹島>로 일컬어지게 되었는가? 그 원인과 해결책을 찾아보자.

먼저, 미국이 동해를 일본해로 단독 표기해야 한다고 의견을 제출한 IHO는 어떤 곳인가? IHO는 1919년 6월 런던에서 열린 국제수로회의에서 회원국 간에 수로정보를 교환하기 위한 목적으로 국제수로국 창설을 결의하였고, 1921년 모나코에 본부를 둔 국제수로국이 탄생했다. 이후 1970년 정부 간 국제기구인 국제수로기구가 설립되었다. 5년마다 국제수로회의를 개최하여, 표준지도인 ‘해양의 명칭 및 경계’를 작성하고 국제수로 이용에 관한 표준규칙 등을 관장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57년 국립해양조사원이 국제수로국에 가입하면서 회원국이 되었고, 현재 총 82개국이 회원으로 등록되어 있다. 이 기구는 바다의 국제적 명칭을 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치는『해양의 경계(S-23)』라는 책을 펴내고 있으며, 1929년의 초판에 동해가 일본해라고 표기된 것을 시작으로 1937년(2판), 1953년(3판) 등 세 차례에 걸쳐 바다의 표기규정을 채택했다.

그러나 당시 우리 정부는 일제 식민지배와 한국전쟁으로 ‘동해’ 표기에 대해 명확한 우리의 주장을 펴지 못했다. 1991년에야 한국이 유엔 가입을 하면서 국제사회에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1992년 8월 정부 차원에서 유엔 지명표준화회의와 IHO에 나가서 동해의 공식 영문 명칭을 ‘East Sea’로 정하고 이를 ‘Sea of Japan’(일본해)과 병기하도록 추진하였다.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최근 세계 여러 나라의 지도에서 ‘동해 / 일본해’라고 표기된 비율이 높아지긴 했지만 아직까지 30%를 넘지 못한다. 이처럼 동해표기 복원까지는 그 길이 요원하다.


세계 속에 대한민국이 등장하기 시작하는 17세기와 18세기 초(初), 지도상에는 ‘동해’가 ‘동방해(Ocean Oriental)’ 로 표기되었고, 18세기와 19세기 초에는 ‘코리아해(Sea of Corea)’ 와 ‘코리아만(Gulf of Corea)’, ‘The Eastern or Corea Sea’로 되어 있다. 그러나 그 후 일본의 영향력이 우세해지는 19세기 초부터는 동해에 대한 명칭이 대부분 ‘Sea of Japan’ 또는 ‘Japan Sea’로 바뀌고, 20세기에 들어와서는 ‘Sea of Japan’ 또는 ‘Japan Sea’라는 명칭일색으로 변하게 되었다. 이로 볼 때 18세기까지는 ‘동해’로의 표기가 국제사회에서 인정되었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은 국제사회에서 ‘동해’ 표기의 복원을 위한 중요한 역사적 근거가 되는 셈이다. 우리 민족에게 일제강점 36년이란 시간은 억울하고 치욕스러운 역사이다. 그런데 그 수난의 시기가 원인이 되어 우리의 영해인 동해가 일본해로 바뀌고 있는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걸까? 이것은 우리 민족에게 백번 사죄해도 부족한 지난날 과오를 그들은 오히려 정당화시키려는 의도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최근 혜정박물관에서 공개한 일본의 고지도에는 동해가 ‘朝鮮海’로 표기되어 있다. 에도시대 천문학자인 다카하시 가게야스<高橋景保>가 1807년부터 1810년에 걸쳐 동판으로 제작, 인쇄한 <신정만국전도>는 서양의 지도와 선박으로부터 습득한 정보를 참고해 만들었다. 우리나라를 반도 형태의 조선으로, ‘동해’는 ‘조선해’로 표시했다. 또 1844년에 만들어진 <신제여지전도>에서도 ‘서울<京>’표시와 함께 ‘동해’를 ‘조선해’로 명기했다. 이 지도는 프랑스 지도를 참고해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당시 일본에서 서양학문에 최고 권위자였던 미쓰쿠리 쇼고<箕作省吾>가 제작해 지도 자체에 권위가 높다는 게 학계의 설명이다. 이 지도에서는 일본 동쪽바다를 ‘대일본해(大日本海)’, 태평양은 ‘대동양(大東洋)’으로 표기하여 동해 표기 연원을 살펴보는데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이밖에 <여지육대주>(1835년), <지구만국방도>(1853년) 등의 지도 역시 ‘동해’를 ‘조선해’로 표기했다. 이처럼 서양 고지도뿐만 아니라 일본에서 만든 고지도에까지 동해는 일본해가 아니었다.

최근 일부 인사들은 서양고지도에 ‘Sea of Corea’, ‘Corea Sea’로 기록되었음을 들어 동해를 ‘한국해’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발상은 지금까지 동해를 ‘일본해’와 병기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외교적인 노력을 기울여온 우리 정부의 노력을 스스로 부인하는 꼴이 된다. 외교는 원칙과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는 국가 간에 발생되는 영토 분쟁을 전쟁으로 해결하는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앞으로는 사료(史料)인 지도가 문제 해결에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다. 어느 민족이든 사료를 부정하는 것은 자신의 선조들의 삶과 생활이 담겨있는 역사를 인정하지 않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독도문제 또한 독립된 안건으로 처리하기보다는 ‘동해’문제와 함께 접근해야 한다. 일본이 독도를 두고 ‘다케시마’라고 하여 자신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이유는 독도가 자신들이 내세우는 ‘일본해’ 속에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영토·영해를 개별적인 문제로 취급하는 대신 우리의 영해인 ‘동해’ 안에 있는 ‘우리 땅, 독도’의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래서 세계지도 상에 우리의 동해를 복원시키는 일이 우선적인 과제이다. ‘독도는 우리 땅이다.’라는 외침보다도 고지도 속에 ‘동해’를 찾아서 사실을 확인시키는 일이 시급하다. 그래서 나는 20여 년 전부터 지도를 통해서 ‘동해 찾기’ 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지도 속에 ‘동해’라고 표기된 지도가 있으면 보이는 대로 수집했다. 그 결과 현재 발굴된 세계 고지도 중 ‘동해’로 표기된 자료가 과거에는 10%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30%에 달한다.



이렇게 실증적인 방법이 있음에도 독도와 동해문제가 대두되면 우리 국민은 의연히 대처하지 못하고 흥분만 한다. 국민을 안심시키기 위해 초병 복장으로 독도를 지키는 모습이라도 보여주어야 하고, 일장기를 불태우며 적의를 표현해야만 하는가? 지난달 우리 정부의 입국금지방침에도 울릉도를 방문하겠다고 나섰던 일본의 자민당 의원들의 행보는 일본사람들에게는 뉴스거리도 되지 않는 사안이다. 극히 일부 보수세력들의 세력화를 위해 벌이는 퍼포먼스에 불과한 것인데, 우리가 나서서 이들을 위해 정치적인 홍보를 하는 꼴이 되었다.

일본의 왜곡된 행태를 바로잡기 위해선 장기적인 계획을 갖고 의연하게 대처해야 한다. 일본의 시마네현에서 독도가 자기 땅이라고 이야기한다면 한국의 울릉도 군수가 “너희들 무슨 소리냐?”라면서 항의 공문을 보내면 된다. 일본이 국가 차원에서 독도 표기에 논쟁에 부치면 우리도 외무부 담당 부서에서 대응하면 되는 것이다.

최근 매스컴에서 보도되고 있는 동해관련 고지도는 대부분 본인이 수집한 자료이다. 이런 귀중한 자료들이 혜정박물관에 있는데도 일반인에게는 이런 박물관이 있다는 사실조차 알려지지 않고 있다. 물론 이런 책임은 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는 본인을 위시한 학교 당국에도 없지 않다. 그런데 이곳을 수소문하여 찾아오는 전문 지식인들조차도 이곳에서 연구와 홍보를 위해 자료를 복제하여 활용했으면 우리나라를 위해 한목소리를 내는 데 힘을 보태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마치 자신들이 중요한 자료들을 수집이라도 한 듯 다투어 전시회를 열고, 문서와 책자를 만들어 생색을 내는 데 여념이 없다. ‘나라를 위해서’라는 대의명분을 내세우지만, 자신의 이름이나 내세우려는 얄팍한 모습으로 보이는 것은 지나친 기우일까?

정부 주요 관계기관의 담당자들 또한 이곳 혜정박물관을 한 번이라도 방문하여 자료를 참고한다면 동해와 독도문제를 위시한 한국의 강역에 대한 정책과 방향이 다르게 결정되리라 생각한다. 이곳에 어떤 자료가 있는지, 이를 어떻게 활용하여 국제사회에 대응할지에 대한 해답이 고지도 속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독도에 해병대를 주둔해야 한다.”라거나 “독도에 대통령이 방문해야 한다.”라는 등의 주장은 독도문제 해결에 근시안적인 방법에 불과하다.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만들려는 일본의 책략에 말려드는 꼴이다.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만드는 건 옳지 않다.

이제부터는 고지도 속에 숨겨진 역사적 가치를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야 한다. 이는 어느 한 개인이나 사립대학교로서는 한계가 있다. 정부와 지자체는 물론 사회적 관심과 지원이 절실할 때이다. 이를 위해 고지도 전문박물관의 건립이 시급하고, 수집한 자료들을 연구하는 전문기관이 필요하다. 역사적인 증거가 확고하고, 이것을 체계적인 연구를 통해 국제사회에서 제대로 인정받게 된다면 일본의 입장도 바뀌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신무(愼懋: 1629~1703)라는 학자가 있었다. 그의 나이 70세로 강원도 고성으로 이사할 때에 과수(果樹)의 씨앗을 많이 가지고 심으려 하였다. 그때 사람들이 그 나이에 언제 키워 수확하겠느냐고 비아냥거리자, 신무는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할 뿐이고(吾爲其當爲) 나에게 이로운지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다.(不念利己者也)”라고 하였다. 실학자 이익의 <신씨가숙연원서(愼氏家塾淵源序)>에 나온 글이다. 고지도를 수집한 지 40여 년. 과거 한국의 역사에서 청나라와 일본에 받았던 굴욕을 후대에 다시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는 신념으로 오늘까지 왔다. 동해와 독도를 바라보는 본인의 이런 주장이 허공 속의 메아리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

▨ 경희대 혜정박물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설립된 세계 최대 규모의 고지도 전문 박물관이다. 11세기부터 20세기에 이르기까지의 동·서양에서 제작된 고지도와 지도첩을 비롯한 고지도 관련의 사료 및 문헌 등의 소장자료는 우리나라를 중심으로 주변 국가까지 포함하고 있어 매우 귀중하고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

김혜정 경희대학교 혜정박물관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