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에서 치열한 항일무장투쟁을 벌이던 독립군을 무려 110여회 넘게 토벌한 일본 관동군 장교가(박정희)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일본인보다 더 일본인답다는 평을 들은 한국인이었습니다
경상북도 문경 보통학교 교사로 있던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는 자진해서 만주군관학교 생도생으로 스스로 들어갔다. 만주군관학교 2기생으로 자원입학(1940년 4월 4일). 다카키 마사오(박정희) 나이 23세. 입교 동기생으로 240중 조선인 12명. 15등으로 입학하였다. 하지만 2기 졸업식에서는 240명중 당당히 1등으로 졸업하였다.
다카키 마사오(박정희) 그 덕에 영광의 얼굴로 [만주일보]에 실린다. 뿐만 아니라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는 졸업식 날 다음과 같은 '선서'를 힘차게 낭독했다.
"대동아 공영권을 이룩하기 위한 성전(聖戰)에서 나는 목숨을 바쳐 사쿠라와 같이 휼륭하게 죽겠습니다."
그 당시 만주는 일본제국주의가 세운 일본 제국주의 괴뢰정권이였다.
박정희가 만주 군관 학교 입학할때 유명한 일화가 하나 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만주군관학교는 일본 제국주의가 만주에 세운 일본 육사 만주 분교정도로 생각하면 딱 맞을것이다.
그래서 조선인이 입학하는것을 원천적으로 막고 있었는데 ..박정희는 얼마나 일본군이 되고 싶었던지
그의 손가락을 잘라 혈서로
"盡忠報國 滅私奉公(진충보국 멸사봉공)" 일본 천황에 대한 이러한 충성혈서로 입학을 하게 된다.
진충보국 멸사봉공을 해석하면
"'충성을 다하여 일본에 보답하고, 나를(私) 죽여서 국가(일본)를(公) 받들겠습니다."
라는 뜻이다.
당시 친일신문〈만주일보 1942. 3. 24〉기사 일부를 인용하면...
[… 빛나는 우등생 오카이(日系), 고야마(日系), 다카키(鮮系-박정희) 등 5명에게 각각 은사상증의 전달이 잇고 폐식 하였다....]
조선인 출신으로는 유일하게 일본 육군 대신상을 수상하기도 한다.
당시 일본육군사관학교 교장 '나구모 쥬이치(南雲忠一)의 다카키 마사오(박정희)에 대한 평가를 들어보자.
『....다카키 생도는 태생은 조선일지 몰라도 천황페하에 바치는 충성심이라는 점에서 그는 보통의 일본인보다 훨씬 일본인다운 데가 있다...』라고 평가하였다.
박정희는 이것으로도 일본 천황에 대한 충성에 양이 차지 않았던지 일본 본토 일본육사로 자진 입학한다.
1942년 일본 육군사관학교 3학견으로 편입학 1944년 4월 300명 가운데 3등의 우수한(?) 성적으로 일본육사 졸업
1943년 가을 일본육사 본과 시절 가나가와현 소재 상무대(일본육사의 이름)에서 동기생들과 함께 한 박정희(앞줄 왼쪽에서 세번째).
사범학교를 하위권으로 졸업했던 박정희는 44년 4월 일본육사를 3등으로 졸업했다. 박정희의 일본육사 동기생인 다니지와 지오 제공.
일본육사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박정희는 드디어 어는 일본군 보다 더욱 충성스러운 일본군 장교가 되어 소위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는 일본 본토의 마쓰야마 제 14연대에 처음 배속을 받았으나 진정한 일본군인을 참작하여 만주 제8연대의 소대장으로 임명되어 모란강 부근의 영안으로 전출되었다가 화북지방의 열하 보병 제8군단에 배속된다.
영안지방 →간도에서 활약한 한인 독립군부대가 북만주로 이동할 때와 노령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들이 서쪽으로 진출할 때에 주둔하던 요충지였다. 열하지구 ⇒ 일본군에 대한 항일 투쟁이 끊이지 않았던 지역이다.
항일세력은 팔로군, 군부군, 광복군, 조선의용군, 소규모의 게릴라 (유격대) 등이었다. 다카기 마사오(박정희)는 이곳에 임관한지 1년만에 중위로 진급한다. 군의 편제상 소대장은 최전선에 배치된다. 여기에서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는 열성적으로 항일부대를 토벌했던 공로로 승진이 빨랐던 것이다.
항일세력의(독립군) 토벌 - 110여회 참가
다카키 마사오(박정희)가 소속되어 있었던 부대는 독립군 토벌에 110여회를 출정하게 되는데 과연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는 양심의 가책이나 동포를 죽이는 행동 때문에 방아쇠를 당기는 행위에 고민을 하였을까?
미안하지만 어림없는 소리다.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는 '조센징 토벌'이라면 환장을 한 놈이었다.
"조센징 토벌이다. 요오시(좋다)"를 연발하며 출정을 즐긴 놈이다. 이 상황을 좀더 자세히 보자
문명자씨의 『내가 본 박정희와 김대중-워싱텅에서 벌어진 일들』에 다카키 마사오(박정희)의 만주군 시절 이야기가 나온다. 1972년 문명자 기자가 어렵게 찾아가서 듣고 기록한 생생한 증언이다.
다카키 마사오(박정희)와 함께 지냈던 어떤 만주군 장교 출신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는 하루 종일 같이 있어도 말 한마디 없는 음침한 성격이었다. 그런데 "내일 조센징 토벌 나간다."하는
명령만 떨어지면 그렇게 말이 없던 자가 갑자기 "요오시(좋다)! 토벌이다."하고 벽력 같이 고함을 치곤 했다. 그래서 우리 일본생도들은 "저거 좀 돈 놈이 아닌가."하고 쑥덕거렸던 기억이 난다....]
이넘손에 얼마나 많은 항일 독립군들이 죽어갔을까를 한번 생각해보자!!
또한 다카키 마사오(박정희)가 10.26으로 김재규 총에 맞아 죽었을 때 주한 일본대사관에서 한 일본 외교관은 이러한 말을 했다.
"대일본제국 최후의 군인이 죽었다." 라고 하였다.
변신의 달인 박정희의 창씨개명 - 조선인 흔적 지우기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란 이름에서는 조선인의 냄새가 난다고 생각하여 다시 작명을 한다. 일본군에 자원입대 했던 것처럼 스스로 작명 실력을 발휘하여 새로운 이름을 만들어 사용한다.
그 이름은 "오카모토 미노루 (岡本實)"이다.
참으로 경악할 박정희의 행동이다. 자작 이름 "오카모토 미노루(岡本實)"는 조선인의 흔적을 지우고자 하는 행동이었던 것이다. 조
선인이라는 흔적을 철저하고... 말끔하게... 깨끗히 지우고 완전한 일본인으로 태어 나고자 했던 것이다.
"오카모토 미노루(岡本實)"는 진짜 일본이름이다. 이 이름 어디에서도 조선사람의 뿌리를 찾을 수 없다.
묻어가기 달인 주어먹기 달인 박근혜의 그 습성이 어디에서 온것인지 이젠 이해가 될듯 하다.
역시 피는 못 속이는 법이다!!
일본 천황과 일본충성이 골수까지 박힌 다카기 마사오 (오카모토 미노루)의 괴이한 행동은 여기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이넘이 쿠테타로 정권을 탈취하고 청와대를 무단 점거해서 독재자가 되는데
이넘은 술만 처마시고 취하면 일본군 장교복을 꺼내와 입고는 일본 군가를 처불렀다는것은 유명한 이야기이다.
이런 일본군 장교 다카끼 마사오 (오카모토 미노루가) 가 순국열사들이 영면하는
우리의 동작동 현충원에 버젓히 누워 있다는 것은 우리민족의 수치이다.
우리민족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민족 반역행위이다.
이넘의 무덤을 당장 국립현충원에서 파내야 한다.
민족반역자 박정희 무덤을 현충원에서 파내기 청원
http://agora.media.daum.net/petition/view?id=78804
이넘이 그랬다지 지무덤에 침을 뱉으라고
니 무덤에는 침이 아니라 오줌을 한바가지 뿌리고 싶다.
계속해서 박정희 이 민족반역자의 실화를 올리겠다.
민족반역자 박정희 처단 국민운동본부 가입하기
http://cafe.daum.net/traitor-parkjunghee